동해로의 출사 - 이제 미쳐가나 보다
사진을 시작한지 반년이 넘으면서
마눌 말따나 이제 나도 슬슬 미쳐 가나 보다
미쳤다는 말 외에는 내 행동을 설명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우선
꼭두 새벽 2시에...
그것도 혼자 천리길을...
영동지방은 폭설로 학교까지 휴교하였고...
더구나 대관령은 영하 18도로 올들어 가장 춥다는데...
대전 처제네 가자던 마눌이
올들어 제일 춥다는 뉴스에 집에 그냥 있겠단다.
그럴량이면 내 혼자라도 동해와 대관령으로 가 일출과 설경을...
지인에게 영동지방 실제상황을 물으니
온통 눈투성이고, 빙판길이라 위험하다 한다.
오지 말라는 뜻인데 그런다고 미친놈 귀에 들어올리가...
밤새 뒤척이다
과감하게 이불을 박차고 일어 났다.
새벽 두시인데 식구들 깰까 살곰살곰 준비해서 빠져 나왔다.
대관령을 지나면서 고속도로가 빙판이다.
속도를 줄이고 최대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한다.
정동진에 도착하니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이 꽤 많다.
주차장에 버스도 여러 대 있고, 사진가들도 여럿 눈에 띈다.
미쳤거나 말거나
기왕 온거 좋은 사진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
수평선 가까이 구름층이 너무 두터워 오여사는 틀렸다.
근데 오여사가 뭐 별게 던가 이런 별천지 역시 어디서 구경한단 말인가?
멀쩡하던 바다가 해가 솟구치자 요동을 한다.
마치 노천탕에 온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온통 바다를 안개로 가득 채운다.
내 동해도 여러번 왔고, 동해의 일출도 여러번 보았지만 이런 풍광은 생애 처음이다.
아마도 영하 6-7 도는 될 법한 극한 추위에 해가 뜨면서 수면 온도가 오르니 안개가 급조되었나 보다.
정동진 일출을 보고.
바로 대관령으로 향한다.
무지 춥다하지만 나처럼 미친 사람들 많을터,
한가할 때 후다닥 사진 찍고 올라가 쉴 요량이었다.
대관령 휴게소에서 해장국으로 배를 채우고
추위에 대비해 옷매무세를 단단히 하고 양떼 목장으로 들어섰다.
막상 목장에 오르니 풍광은 그야말로 죽이는데 눈을 뜰 수가 없다.
추위는 고사하고 강풍때문에 몸도 못가눌 정도인데 그래도 눈은 뷰파인더에 가 있다.
쌓인 눈이 줄잡아 허리 높이는 된다.
길이라도 비켜서 빠지면 그야말로 허리까지 푹 빠져 버린다.
이게 바로 설국(雪國)이다.
바람만 없다면 그냥 한 없이 걷고 싶다.
추위와 바람과는 상관 없이
어허! 하늘은 왜 이리 청명한가?
정말 떠나기가 싫다.
내 다 늙어 뭔 감흥이 있겠냐만,
이 정도의 아름다움이라면 늙은이의 마음도 새로와지나 보다.
왠일인지 볼만큼 보니 욕심이 없어졌다.
사실 서둘러 나와 방태산이나 월정사를 들렸다 갈까 했는데...
예서 오랜만에 본 설경이 너무 좋아서 일까 아무데도 가기 싫다.
뭐 이정도라면 예까지 남들에게 미쳤다고 손가락질 받아도 다시 올만하지 않은가?
2011. 12. 10 동해로의 출사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