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바위의 큰 얼굴
이보게 울산바위야!
가다가 중지하면 아니간만 못하다 했거늘
어찌 금강산으로 가다가 예서 머물러 이름도 생소한 울산바위가 설악에 있는가?
게을러서라지만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다 채우도록 늦장부렸다는데,
얼마나 게으르면, 우리네 땅에 잘난 봉우리가 몇개나 된다고 백등 천등도 아니고 일만이천 등도 못했단 말인가?
아니면
가기 싫은 발걸음이라
일부러 거북이 걸음으로 세월아 네월아 한 건 아니었던가?
어쨌거나
그래도 설악산 한 모퉁이에 자리 하나 얻었으니
어찌 생각하면 금강산 일만 이천봉보다 설악이 더 좋지 않은가?
자고로 이쁜 얼굴은
봐 주는 사람이 많아야 하는 법
북쪽 살벌한 금강산보다야 휴가철이면 발디딜 틈도 없는 설악이 바로 네 자리이니 이게 바로 전화위복이란거 아니겠는가
덕분에
나도 가끔 가서
네 잘난 얼굴도 요렇게 그려오지 않는가?
대승폭포를 찾아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풍경 보여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랫 마을 원통리에 사는 나이 지긋한 네 분(두 부부인듯)이 제대로 된 폭포를 보기 위해 올해 여러번 올랐다는데
폭포같지도 않게 쫄쫄 흘러내리던 폭포가 이제야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니 대상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산신령이겠지...) 그저 감사하단다.
연중 장마철, 비가 많이 올 때나 제 모습을 나타내니
올 장마철에도 혹시나 하고 몇 번 왔었는데 이런 제대로 된 폭포다운 모습은 못보았다 한다.
어제도 비가 많이 와서 이제다 싶어 왔더니 어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입산 금지라 못올라 오고, 오늘 다시 와서 제대로 된 폭포를 보니 정말 고맙단다.
"야, 장관이다."
"내 여기 수도 없이 다녀 갔지만 오늘 같은 폭포를 보기는 내 생애 처음일쎄..."
설악산을 자주 찾는다는 우리보다 딱 한발짝 먼저 전망대에 도착한 등산객들이 자기네끼리 주고 받던 말이다.
다 맞는 말이다.
이 곳 대승 폭포는 금강산 구룡폭포, 개성의 박연 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라는데 그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제대로 된 폭포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높이 78m의 직폭,
그러나 명성과는 다르게 실폭포가 되어 보일동말동하니
대승령 등산객들이나 가는 길에 잠깐 들러볼 뿐 폭포만을 보기 위해 한 시간여를, 그나마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오는 이가 몇이나 있었겠는가?
몇 해 전부터 대승폭포를 점지해 두긴 했는데
작년까진 일을 해야하는 처지였기에 기회가 없었고,
올해 들어서 한계령 쪽 일기예보에 관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이번에 이 지역에 폭우가 내렸단다.
근데 하필이면 황금 피서철인 8월 첫주요
그것도 일요일리라니 이거 제대로 갈 수나 있겠는가 걱정된다.
그래서 설마하니 새벽부터 차가 밀리진 않겠지 하는 마음에서 새벽 두시에 출발을 한다.
한 번도 안 쉬고 그냥 내달려 장수대 입구에 도착하니 딱 네시다.
네시부터 입산 가능한 시간이고 오르는데 한 시간 정도라니 도착하면 딱 맞는 시간대다.
일부러 밝아 오는 아침 시간을 맞추기 위해 천천히 여유를 부리며 올라가니 내설악이 환하게 반겨 준다.
대승 폭포가 가까워 오자
산을 울리는 폭포 소리에 가슴이 뛴다.
아, 드디어 대승폭포의 진짜 얼굴을 볼 수 있겠구나 흥분이 된다.
아랫 동네 원통리에서 올라왔다는 그분들 처음 왔다니 복 받은 사람들이란다.
처음와서 제대로된 대승폭포를 보았으니 복 받은 건 맞지만 이거 그냥 거저 얻은 복은 아니라오.
여름되면서 이제나 저제나 큰비 소식만 기다리다가 폭우가 왔다는 기상청 예보를 보고, 또 속초 사는 친구한테 확인까지 하고 온 덕이라오.
울산바위
위풍 당당한 울산 바위
구름 덮힌 울산바위
대승 폭포에서 노닐다 내려오니 7시가 넘었다.
두번째 목표는 외설악이었는데 장수대에서 보는 하늘은 너무 쾌청하다.
이 정도라면 가나마나라고 생각하고 친구에게 전화하니 속초는 지금도 비가 내리고 있단다.
지금 당장은 비가 내린다지만,
비가 그치고 해가 중천에 뜨면 구름도 없을터
아침 식사도 포기하고 외설악, 설악동을 향해 달린다.
근데, 막상 한계령을 넘으니
비도 그치고 구름마져 다 사라져 버렸다.
그 나마 울산바위 쪽 하늘에 구름띠가 보여 방향을 설악동에서 미시령 쪽으로 튼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뭐 대단한 그림은 아니라도
늘 밋밋한 울산바위만 보다가 구름에 덮힌 그림을 보다니...
그것도 몇 시간씩 산행을 한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울산바위 건너편 신선봉에 오른것도 아니고 그냥 미시령 옛길 쉼터에서
차 대고 몇 발짝 움직여 요런 그림을 담는다는 건 운도 운이지만 호사 중의 호사가 아니겠는가?
그래도 나는 주장한다.
이건 운이 좋은게 아니고 선택을 잘한거라고...
그나저나 미시령 길에선 늘 보이는 울산바위가 한 여름 폭우가 지나간 후엔 요런 얼굴도 보여주는구나.
비를 찾아 떠난 설악산
구름도 한계령을 넘어오는 구나
폭우는 이름도 없는 작은 폭포도 그림이 되게 한다
생기다 만 아쉬운 운해
무슨 소원이 그리도 많았기에
올 여름 사진의 방향이 좀 이상타.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심신이 좀 힘들더니 제 정신이 아닌건가?
오호, 통재라! 하필 우중충하게스리 '비를 찾아 떠나는 사진 여행' 이라니...
예년처럼
예쁜 연꽃도 좀 찾아 다니고
귀여운 개개비도 좀 만나보고 하지...
굳이 변명을 하자면
사진 찍을거리가 귀한 여름이지만
올 여름은 더더욱 사진 찍을만한게 없었다.
무엇보다도
여름이면 떠오르는 연꽃도 오랜 가뭄으로 질이 떨어졌고,
한 걸음도 내딛기 힘든 폭염 또한 발길을 막으니 '비를 쫓아서,,,' 요건 최선의 선택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닐까?
또한
비온뒤에는 물가뿐만 아니라
비온 뒤엔 산도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니 비를 쫒아 다니는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겠는가?
그래서 이번 여름은 유난히 비를 쫓아 다닌꼴이 되었다.
뭐 꼭 좋은 그림만 찾아다니는 사람 아니고 힐링도 되는 사진 여행이라면
시원한 폭포, 비온 뒤의 구름 덮힌 산자락도 좋고, 빡시게 걷는 길은 건강에도 도움이 될테니 마다할 수 없지 않은가?
이번 사진 여행도 대승폭포로, 울산 바위로
그리곤 남는 여분의 시간엔 백담사와 수렴동 계곡도 들리니 이만하면 힐링되고도 남지 않겠는가?
오는 길에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몇년만에 만수위까지 차오른 바다같은 소양호를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오늘 그림도 좋았지만 모처럼 만수가 된 소양호를 보니 이번 비는 그야말로 단비였다.'고...
2017. 8. 12. 설악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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