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사진 모음/사찰 풍경 사진

문경 김룡사에서 대승사까지

by 자연 사랑 2022. 8. 2.

 

 

문경의 절을 찾아서

 

 

 

 

 

내가 사는 세상,

그 세상이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더라도

가끔은 이렇게 그 세상에서 헤어나 숲에 들고 싶다.

 

 

 

 

그래서

나는 늘 핑계를 만든다.

열심히 일한 만큼 휴식은 필연이고, 또한 쉴 자격도 있노라고...

 

 

 

 

아름다운 금수강산에 갈 곳도 많은데

내 佛者도 아니면서 굳이 산사를 찾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우리네 山河에선 山寺가 있는 곳이 대부분 명승지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힐링을 위한 곳이라면 이름 없는 곳이 좋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므로 별로 유명한 사찰은 아니지만,

절의 규모보다는 들고 나는 길에 느끼는 숲 향기가 좋은 곳을 찾아보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문경의 김룡사와 대승사를 알게 되었다.

더구나 두 절이 거느리고 있는 암자의 숲 향기가 참 좋다는 것에도 호감이 갔다.

 

 

 

 

문경이라면

문경새재를 비롯해

조령산, 주흘산 등 나에겐 꽤나 친근한 곳이긴 하지만...

 

 

 

 

김룡사와 대승사

그리고 윤필암 등의 암자들은 금시초문이어서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역시 소문대로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면서도 숲 향기가 좋아 발길이 행복했던 나들이었다.

 

 

 

 

 

어쩌면

그 동안의 유명세가 있는 큰 절보다

가슴 속엔 더 큰 감동을 담아 온 발걸음이었는지도...

 

 

 

 

운달산 김룡사와 암자들

 

 

 

 

김룡사의 들머리인 일주문이다.

대부분 사찰의 들머리는 일주문인데,

보기 드물게 홍화문라 쓰여있고 운달산 김룡사라 적혀있는 현판도 보인다.

 

 

 

 

홍하는 붉은 노을이라는 뜻이라는데

이 말은 성철 스님이 즐겨 사용하던 말이었단다.

김룡사는 성철스님과 인연이 깊고, 스님께서는 이절에서 처음 설법을 시작했다고 한다.

 

 

 

 

우선 김룡사가 아닌 암자부터 찾아보기로 한다.

김룡사엔 14개의 암자가 있었다는데 지금은 대성암, 화장암, 양진암이 남아있다고 한다.

오늘은 무리하지 않는 발걸음으로 양진암은 포기하고 운달계곡을 끼고 있는 대성암과 화장암만 보기로 한다.

 

 

 

 

김룡사 홍하문을 지나 두 갈래 길에서

운달계곡을 따라 왼쪽 길로 접어들면 전나무 숲길이 나온다.

그 숲길을 따라 5분정도 오르면 작은 다리가(如如橋) 나오고 다리를 건너면 바로 대성암이다.

 

 

 

 

대성암은

비구니 스님들이 수양하는 곳이라는데

 여인네들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아주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다.

 

 

 

 

내 풍수(風水)는 모르지만,

그야말로 운달계곡을 끼고 녹음짙은 운달산과 어우러져있어

이 곳에 몸 담고 있는 것만으로도 속세의 떼가 씻겨내려갈 거 같은 생각이 든다.

 

 

 

 

대성암을 나와 다시

계곡을 따라 숲길을 오른다.

해가 중천에 떠 있지만 숲이 그늘을 만들어주어 덜 덮다.

 

 

 

 

숲 길 옆으로

대성암의 옆자락이 보인다.

정갈했던 암자의 모습이 잡초사이로 보니 고택(古宅)의 느낌이 든다.

 

 

 

 

호기심에 대성암 뒷자락 사립문으로

암자의 뒤태를 보는데 그네도 보이고 원두막도 보인다.

오메야, 이거 뭐 절집이 아니라 잘 가꾸어진 개인 정원이 아닌가?

 

 

 

 

이제 대성암을 뒤로하고 화장암을 보기위해 다시 숲길을 오른다.

십여분을 올랐나, 계곡을 따라 가는 길과 산중턱으로 오르는 두갈래 길이 나온다.

이정표가 없어 계곡 길을 따라 오르다가 아무래도 아닌거 같아 다시 내려와 산중턱으로 난 길을 오른다.

 

 

 

 

산길이 그러하겠지만

빡샌 경사지도 있고 길도 자길길이다.

어림잡아 이길로 왔는데 다행스럽게 암자가 보인다.

 

 

 

 

으잉!

입구에 잡풀이 무성한데

출입구인 대문을 열쇠로 잠궈버렸다.

 

 

 

 

살짝 보이는 문틈으로 안을 들여바보니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있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듯하다.

마당에 우거진 잡풀이나 마루밑까지 무성한 잡풀을 보니 적어도 한달은 사람 손길이 없었던듯하다.

 

 

 

 

힘들게 찾아 온길

혹시 암자로 드는 다른 길이 있나 찾아보았으나

그저 무너진 담자락이 사람 흔적이 없었음을 설명해주는듯하다.

 

 

 

 

암자의 앞자락에서 보니

화장암(華藏庵)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어떤 이유에서 스님들이 살지 않는지 모르지만 일반인에게 빌려준다면 호응이 괜찮을듯(나를 포함)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려 오는 길 계곡이 멀지 않은지

계곡에서 노는 사람들 소리가 크게 들려 온다.

아마도 저 근체에 운달폭포가 있겠지만, 오늘 갈길이 멀어 그냥 내려 온다.

 

 

 

 

거참

그리 많이 걷지도 안았는데 그것도 일이라고 꽤나 피곤하다.

대성암 앞에 있는 원두막에 10여분 누웠다가 땀도 식히고 몸도 추스린 후 김룡사로 향한다.

 

 

 

 

대성암에서 조금 내려 오니

전나무가 쭉쭉 뻗은 김룡사의 들머리가 보인다.

내소사나 오대산 상원사 등의 전나무 숲만은 못하지만 한여름을 식혀주기엔 충분하다.

 

 

 

 

절 입구에 다다르니 보장문이라는 현판이 보인다.

보장(寶藏)이란 말은 부처의 미묘한 교법을 보배 창고에 비유하여 이르는 말인데,

절집을 지키는 사대천왕도 나무가 아닌 석조물로 만들었고, 일주문을 홍하문이라 했듯 뭔가 보편을 따르지 않는 특별함이 있는 절이다.

 

 

 

 

드디어 절에 드니

절 규모가 생각보다 꽤 크다.

마침 맑은 하늘까지 보태지니 절 그림이 참 좋다.

 

 

 

 

절집을 둘러싸고 있는 소나무 숲과

스님들의 맛깔스런 공양을 책임지는 장독대,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담이 어우러져 정감있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대웅전의 옆모습이다.

연휴라 찾는 이가 많으려니 했는데

대웅전에서 불공 드리는 사람은 겨우 둘 뿐이다.

 

 

 

 

깨닭음이 곧 비움이고 해탈이려니,

해탈교를 지나 명부전으로 가는 길목에서 본 김룡사의 전경.

오밀조밀하게 붙어있어 조금은 복잡한듯한 김룡사가 예서 보니 절집이 한눈에 들어오기도 하려니와 아름답기도 하다.

 

 

 

 

좀 전에 대웅전에서 본 부부 모습이 정겹다.

오천만 디카시대답게 무슨 그림을 보았는지 사진찍기에 바쁜 여인,

그에 비해 남정네는 강 건너 불보듯 어정쩡한 모습으로 마누라 뒤를 따라간다.

 

 

 

 

절집 꼭데기 숲에 약사여래 불상이 있다.

약사여래불이라면 중생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에서 구원해 준다는 부처이니  

내 불자가 아니라서 불공 드리는 법도 모르지만 약사여래불을 보면 건강해질거 같아 발길을 옮겨 본다. 

 

 

 

 

약사여래불 앞에 서니 소나무 숲 사이로 절의 모습이 보일동말동한다.

기왕 건강을 관장하나는 약사여래불과 소나무숲에 들었으니 한참을 소나무 향에 취해본다.

아래 그림은 300년된 해우소로 선운사의 해우소와 함께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해우소로 유명세를 타고있다하니... 어허! 뒷간도 오래되면 유명해 지나보다.

 

 

 

대승사와 암자를 찾아서

 

 

 

 

김룡사를 나와 대승사로 발길을 돌린다.

김룡사와 대승사는 문경 산북면에 위치하고 있어

위치상으로 가까워 두 절을 함께 탐방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대승사는

창건 시기가 신라 진평왕때로 올라가는 역사가 깊은 사찰로서

사불산의 사면석불(사불암)에 공양을 올리기 위해 창건하게 되었다는 창건 설화가 있는 절이다.

 

 

 

 

대승사는

1500년 고찰의 역사적인 가치도 크지만

우리 시대의 큰 스님이셨던 청담스님이나 성철 스님이 주석하면서 한국불교의 선풍을 일으킨 곳이라고도 한다.

 

 

 

 

내 절 숲이 좋다보니

한 달에 한 번 쯤은 절을 찾아 나서지만,

불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불교에 대한 지식 또한 무지하기에 사실 찾는 절의 내면에는 관심도 없다.

 

 

 

 

그저

겉으로 보이는 절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것이 전부이다보니

겉에 보이는 절의 모습을 보고 수박 겉핡기식으로 보이는대로 느끼는대로 주절대는게 고작이다.

 

 

 

 

이런 문외한의 눈에는

지금의 대승사는 얼마나 절을 크게 증축을 하려는지

여기저기 쌓인 목재와 크레인이 사실은 좀 밉게 보여 못마땅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승사를 둘러보고

서둘러 사불암을 찾아 나선다.

사불암은 대승사에서 약 1 KM 정도 거리라니 그 정도라면 어렵지는 않은 걸음이긴하다.

 

 

 

 

대승사부터 600 M 거리가 표시된 곳에 장군수라는 약수터가 있다.

그냥 지나치는데 산행을 마친 세 분 스님들이 '이 약수는 그야말로 藥水'라고 꼭 마시고 가란다.

스님들의 권고에 발걸음을 돌려 시원한 약수를 한 사발 들이키고, 반쯤 남은 패트병에도 약수물로 새로 채웠다.

 

 

 

 

이 장군수 약수터 옆에 세갈래길이 있다.

하나는 윤필암으로 가는 길이고, 또 하나는 대승사로 가는 길이다.

사불암으로 가는 길은 바로 산위로 나있는 계단 길인데 예서부터 옴팡지게 가파른 전형적인 산길이다.

 

 

 

 

이 곳을 지나는 이들이야 주로 불자들일테고,

절에서 또한 산위 사불암에서 부처님전에 참배도 했을터인데

무엇을 그리도 간절히 바라기에 이렇듯 돌 쌓기 쉽지 않은 곳에조차 정성들여 탑을 만들었을까?

 

 

 

 

아, 드디어 사면석불이라는 사불암이다.

고려때의 중 일연이 단군신화를 기록으로 전한 삼국유사에서

'하늘에서 붉은 비단으로 덮힌 사면석불이 공덕산(현 사불산) 중턱에 내렸다' 전하였다 한다.

 

 

 

 

호기심으로 사불암의 석불을 찾아보는데

어쩐 일인지 사면에 석불이 있다는데 내 눈에는 석불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신심이 부족한 때문이거나, 천오백년 세월의 풍화가 부처의 흔적을 지웠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면암에 서니

멀리 산그리메도 보이고 탁 트인 전망이 좋다.

멀리 보던 눈을 산아래로 돌리니 여러채의 요사체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윤필암이라 한다.

 

 

 

 

사불암에서 내려와 윤필암으로 온다.

윤필암은 고려 우왕때(1380) 각관비구가 창건하였다는 여승들의 수련도장으로

수덕산(덕숭산)의 견성암, 오대산 지장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비구선방으로 꽤나 유명한 암자이다.

 

 

 

 

윤필암을 찾은 내 첫 인상은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 곳이 정녕 스님들이 수련하고 도를 닦는 암자란 말인가,

아니면 불자들이 그토록 바라는 극락이 여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움에 놀랄뿐이었다.

 

 

 

 

내 불자가 아니라도

지금껏 수많은 절을 탐방을 했는데,

'우리나라 어디에 이렇듯 정갈하고 아름다운 절이 또 있었던가' 놀랍다.

 

 

 

 

녹음 짙은 사불산에 폭 쌓인 여러 요사채도 아름답거니와

여승들의 세세한 손길을 머금은 꽃밭과 잘 다듬어진 정갈한 절집 곳곳이

그야말로 여인의 향기를 넘어 어머니의 아늑한 품속처럼 다가오는 청정도량이다.

 

 

 

 

이곳 윤필암은 비구니들의 수련도장답게

대부분의 요사채들이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인데

이 사불전만은 신도들에게 출입이 허용되는 기도도량이다.

 

 

 

 

이 사불전에는 부처를 모시지 않는다.

적멸보궁에도 부처를 모시지 않고 부처의 진신사리를 향해 참배를 하는데,

이 사불전 역시 유리창을 통해 정면으로 보이는 사불산 정상의 사면석불을 향해 참배하는 것이다.

 

 

 

 

비록 각 요사채가 출입금지 구역이긴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절집에 현혹되어 큰 키를 이용해 담 넘어로 본다.

이곳 역시 잘 가꾸어진 수목과 요사채가 정원같이 아름답고 정갈하게 꾸며져있다.

 

 

 

 

사불전에서 처음 만난 여신도가

나옹선사가 출가한 묘적암을 꼭 들려보라고 권한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긴 하지만 500 여미터라는 말에 피곤함을 잊고 묘적암으로 오른다.

 

 

 

 

애마를 중간에 세우고 산길을 오른다.

이곳도 키 자랑하듯 쭉쭉 뻗은 전나무 숲이

힘든 발걸음의 피로를 조금은 덜어주는듯 하다.

 

 

 

 

으잉!

요게 묘적암이야?

이곳이 고려의 고승인 나옹선사가 출가를 한 천년 역사의 암자란 말인가?

 

 

 

 

숱한 고승을 품은 묘적암,

그 유명세라면 이미 몇십번을 증축하고도 남았을터인데,

이렇듯 옹색하기 짝이 없은 모습이라니... 허기사 오히려 이런 옛모습 그대로라는게 새로움에 지친 현대인에게 더 큰 감명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를 일이다.

 

 

 

 

 

2014. 6. 6. 문경 김룡사에서 대승사까지

댓글